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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눈 감은 천사 - 3부(완)

  “ 난 이 문신을 보면서 계속해서 읊조려요 . ‘ 깨어있을 것 , 깨어있을 것 ’ 이렇게 . 왼손이 생각나거나 보일 때마다 . 이 습관이 문신처럼 내 몸에 새겨져 있어요 . 그래서 꿈속에서도 왼손이 보이면 ‘ 깨어있을 것 ’ 이라고 말하죠 . 그럼 꿈속에서 꿈을 깰 수 있어요 .” “ 꿈이라는 것을 알면 무엇을 할 수 있는 거죠 ?” 나는 그의 왼손을 보며 물었다 . 왼손에는 눈 감은 모르페우스가 천천히 비행을 하고 있었다 . “ 처음에는 꿈을 정확히 볼 수 있어요 . 꿈속에 등장하는 사람의 생김새뿐 아니라 그 사람의 습관까지 볼 수 있죠 . 꿈 속에 나오는 모든 것의 모양 , 색 , 촉감 , 향 , 맛 모두를 정확히 느낄 수 있어요 . 그것이 익숙해지면 내 꿈을 의지대로 조정할 수 있어요 . 그 때부터는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어요 . 여기서 조심해야 해요 . 이걸 단순히 즐기기만 해서는 안 돼요 . 많은 사람들이 꿈을 즐기기만 하다가 꿈의 신에게 쫓겨나죠 .” “ 타인의 꿈에 들어갈 수도 있나요 ?” “ 물론이지요 . 당신이 그 사람에게 충분한 애정이 있다면 . 그리고 꿈의 주인이 허락해준다면 .” “ 죽은 자의 꿈도 볼 수 있나요 ?” 내가 묻자 그는 나를 깊게 쳐다보았다 . 그의 눈동자도 그녀처럼 깊이가 있다 . 평소라면 내 안의 비밀스러운 부분을 숨기기 위해 눈을 피했을 것이다 .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 그는 이미 내 꿈의 한 자락을 보았다 . “ 그 사람이 지금 꿈꾸고 있다면 가능해요 .” “ 이해가 잘 가지 않아요 .” “ 그건 질문 자체가 너무 난해해서 그래요 .” 그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 그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 “ 나도 죽은 자의 꿈을 본적은 없어요 . 하지만 죽은 자도 일정 기간 꿈을 꿔요 . 죽은 자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면 그자의 꿈도 볼 수 있어요 .” 말을 마치고 그는 또 내 얼굴과 내 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 그는 내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 아마 물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이야기)눈 감은 천사 - 2부

  그 후로 우리는 종종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 그가 먼저 오면 내가 그의 자리로 갔고 , 내가 먼저 오면 그가 내 자리로 왔다 .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주문하고 천천히 커피 향을 맡는다 . 그리고는 커피로 내 몸 안을 천천히 두드리며 점검한다 . 그도 역시 그만의 방법으로 천천히 커피를 음미했다 .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의식을 치룬 뒤 이야기를 나누었다 . 처음에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 다른 시시껄렁한 이야기처럼 별다른 의미가 없다 .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 어느 순간 이야기의 방향이 정해진다 . 방향이 정해지면 나는 주로 조용히 듣기 시작했다 . 그는 여러 방면에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   “ 혹시 카톡릭 신자인가요 ?” 종교 이야기가 화제로 떠오르자 나는 그에게 질문을 했다 . “ 아니요 . 그런 분위기가 나나요 ?” “ 아 . 그게 아니라 . 사실 당신의 천사 문신 때문이에요 . 내가 아는 종교 중에서 천사 문신을 할 법한 건 ‘ 가톨릭 ’ 밖에 없어서 .” 그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 하지만 문신을 주제로 올린 적은 처음이었다 .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 “ 그럼 천사 문신이 아닌가요 ?” “ 뭐 천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 정확히는 모르페우스라는 신이에요 .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꿈의 신이에요 .” 들어본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히 나지는 않았다 . 제우스나 헤라 , 아테네 같은 신들만이 정확히 떠오를 뿐이었다 . “ 혹시 어떤 의미가 있나요 ?” 나는 더욱 조심스럽게 물었다 . 그는 미소를 지었다 . “ 이 문신 때문에 지금 여기 ,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  ----------------------------------------------------------------------------------------------------   그녀는 힌두교 신자도 불교 신자도 아니었다 . 하지만 윤회를 믿었다 . 나는 그것이 그녀의 이

(이야기)눈 감은 천사 - 1부

  나는 그를 ‘ 눈감은 천사 ’ 라고 불렀다 . 물론 그를 직접적으로 “ 눈 감은 천사 ” 이렇게 부르지는 않았다 . 우리는 게임 속에서 만난 사이가 아니다 . 그의 문신이 천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뒤에도 나는 그를 ‘ 눈감은 천사 ’ 라 생각했다 . --------------------------------------------------------------------------------------------- 정신이 돌아왔을 때 , 나는 그녀와 나에게로 오는 죽음이 보였다 . 죽음은 어둠과 흰 빛으로 교차되면서 내 주변을 떠다녔다 . 그 빛은 확실히 죽음의 신호였다 . 하지만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 아마 육체에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 감각이 사라짐과 동시에 나와 내 주위의 경계가 서서히 무너졌다 . 그때 육체적 고통이 조금이라도 느껴졌다면 죽음이라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인 형태로 나타났을지도 모른다 . 하지만 내가 본 죽음은 우리가 아는 저승사자와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 . 죽음은 단지 어둠과 빛이었다 . 목탄화처럼 검정과 하양의 명암만을 달리하며 , 죽음은 천천히 우리의 주위를 맴돌았다 . 내가 죽음의 움직임을 눈으로 힘겹게 따라가는 순간 , 그녀는 내게 천천히 손을 뻗었다 . 그러면서 그녀는 힘겹게 나에게 무엇인가를 말했다 . 입술의 미묘한 움직임이 보였다 .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집중했다 .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내 귓가에 뜻 없는 바람 소리 마냥 스칠 뿐이었다 . 소리는 이내 사라졌다 . 그와 동시에 내 의식도 함께 사라졌다 . 그것이 나의 눈으로 본 마지막 그녀의 모습이다 . 하지만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끝없이 변주되어 내 꿈속에 나타났다 . --------------------------------------------------------------------------------------------- ‘ 눈을 감은 천사 ’ 는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 코는 높았고 쌍꺼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