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눈 감은 천사 - 2부
그 후로 우리는 종종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먼저 오면 내가 그의 자리로 갔고, 내가 먼저 오면 그가 내 자리로 왔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주문하고 천천히 커피 향을 맡는다. 그리고는 커피로 내 몸 안을 천천히 두드리며 점검한다.
그도 역시 그만의 방법으로 천천히 커피를 음미했다. 우리는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의식을 치룬 뒤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다른 시시껄렁한 이야기처럼 별다른 의미가 없다.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 어느 순간 이야기의 방향이 정해진다. 방향이 정해지면 나는 주로 조용히 듣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방면에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혹시 카톡릭 신자인가요?” 종교 이야기가 화제로 떠오르자 나는 그에게 질문을 했다.
“아니요. 그런 분위기가 나나요?”
“아. 그게 아니라. 사실 당신의 천사 문신 때문이에요. 내가 아는 종교 중에서 천사 문신을 할 법한 건 ‘가톨릭’ 밖에 없어서.”
그와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문신을 주제로 올린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천사 문신이 아닌가요?”
“뭐 천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정확히는 모르페우스라는 신이에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꿈의 신이에요.”
들어본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히 나지는 않았다. 제우스나 헤라, 아테네 같은 신들만이 정확히 떠오를 뿐이었다.
“혹시 어떤 의미가 있나요?”
나는 더욱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 문신 때문에 지금 여기,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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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힌두교 신자도 불교 신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윤회를 믿었다. 나는 그것이 그녀의 이름 때문이라고 놀리곤 했다.
“혜인이라는 이름 때문이야. 절 이름이잖아. 혜인사”
“참 나 해인사야. ‘혜’ 자가 아니라 바깥 ‘해’ 자라고” 그녀는 기가 차다는 듯이 대꾸했다.
“아무튼 그 때문이야. 그 영향으로 윤회를 믿는 거야.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사람이 다시 태어난다는 걸 믿을 수 있지?”
나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느껴. 나는 예전 기억이 있어. 그래서 믿을수 밖에 없어.”
그녀는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며 말했다. 짙은 갈색의 눈동자는 과거의 기억을 담기 충분할 만큼 깊었다.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그녀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묻곤 했다.
“윤회를 하면 모든 기억을 잃는다면서 어떻게 기억을 한다는 거야? 예전 삶이 기억나는 거야?”
“맞아. 모든 기억을 잊어. 나도 예전 삶을 기억하는 것은 아냐.”
그녀는 잃어버린 역사마저 기록하려는 사서마냥 한 곳을 집중하며 말을 이었다.
“태어났을 때 기억이 나. 그 때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기억이 나. 그러니까 어머니의 얼굴과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이나. 그리고 그 순간의 느낌이 정확히 기억이 나.”
나는 숨 죽여 그녀의 손짓을 보았다. 그녀는 천천히 원을 만들며 이야기 했다.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이 사람들은 뭐지.”
언제 들어도 신비로운 이야기다.
혜인이는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내가 아는 모든 교사 중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교사였다. 종종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에 그녀의 학생들이 가진 장애가 더욱 두르러지게 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동정의 눈이 내게 보이면 그녀는 밝게 내게 말했다.
“내 학생들 중에 아이슈타인이 있을 수도 있어.”
“무슨 소리야?”
“천재들은 다시 태어날 때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거든. 천재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다음 생에 장애 정도도 심해지지”
천재들은 죽은 후 장애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또다시 천재로 태어나는 것을 막아 인류의 발전 속도를 조절하려는 신의 의도일 수도 있다. 정확한 이유는 그녀도 모른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천재들은 다음 생에 장애를 앓고 태어난다. 아이슈타인은 뇌에, 로댕은 팔에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것이고(또는 태어났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아마 몸에 멀쩡한 곳이 없이 태어날 것이다(또는 태어났다). 다시 태어난 천재들은 예전에 자신들이 얼마나 천재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평범한 우리와 같다.
“그래서 헬렌켈러 같은 사람도 나오는 거구나. ”
내 말에 혜인이는 멋진 미소를 보냈다. 그게 너무나 좋았다.
“근데 나 같은 사람은 수천 년이 지나도 지금과 같이 태어나겠네. 지금도 미적분을 이해하기 힘들고, 어린 시절 2년이나 피아노를 배웠지만 체르니도 못 치니까. 근데 나 같은 사람은 진보란 전혀 없는 거야? 다시 태어나도 지금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고, 다시 태어날 때 다 잊어버리기까지 하잖아.”
내 말에 그녀는 다시 한번 환하게 웃었다. 참 좋았다.
1층 화단에 놓인 고양이 사료 그릇과 물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사료 없는 그릇은 더는 고양이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주위에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화단에서 길고양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끔 기분이 좋은 고양이가 다가와 내 다리에 머리를 문지르곤 했다.
“고양이에게만은 꽤나 인기군!”
그녀는 이렇게 자주 나를 놀렸다. 발걸음을 옮겨 근처 편의점에서 고양이 전용 캔 참치 몇 통을 샀다. 참치를 고양이 사료 그릇에 붓고 고양이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늘은 고양이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유튜브를 켜고 고양이 동영상을 보았다. 그러다 의식도 하지 못한 채 잠에 들었다.
갑자기 온몸이 고통으로 물들었다. 견딜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난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깼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은 것 같다. 꿈이 아니라 육체의 고통으로 잠을 깬 것은 요근래 처음이었다. 난 울기 시작했다. 햇살이 비칠 때까지 계속 소리를 높여 울었다.
근근이 쌓아 올린 일상은 너무나 쉽사리 무너졌다. 난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잠을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꿈을 꾸기 위해서 누워 있었다. 다행히도 의식은 쉽게 나락으로 떨어졌고, 잠은 꿈의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그곳에는 혜인이가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다. 관심도 없었다. 계속해서 꿈을 꾸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날 꿈속에서 큰 고분이 눈앞에 보였다. 짙은 초록색의 잔디가 고분을 덮고 있었다. 초록이 너무 짙었다. 그리고 고분 옆으로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시냇물 역시 파랑의 느낌이 강했다. 모든 색이 너무 진해서 어울리지 않았다. 난 좀 더 자세히 시냇물의 색을 보고 싶어 두 손을 모아 시냇물을 퍼 올렸다. 손안에 담긴 시냇물은 투명했다. 파랑의 느낌은 온데간데없었다.
화들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누군가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전혀 웃음기가 모습으로. 나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도 손을 흔들었다. ‘눈감은 천사’였다
다음날 몸을 일으켜 산책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페이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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